새벽 2시 17분.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의 형광등이 차갑게 빛났다. 최도진은 휠소터 앞에 서서 컨베이어 벨트 위를 흐르는 택배 상자들을 지켜봤다. 기계가 바코드를 읽고, 분류하고, 배출한다. 분당 12,000개. 인간의 손보다 빠르다.
하지만 도진은 안다. 저 기계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도진 씨!"
김택배 책임이 소리쳤다. 52세. 25년차 베테랑. 손에 스캐너를 든 채 컨베이어 벨트 옆을 따라 걸었다.
"7번 라인, 또 오류야. 바코드 읽기 실패. 수동으로 넘겨."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 7번 라인은 항상 그랬다. 습도가 높은 날이면 어김없이 오류를 뱉어냈다. 엔지니어를 불러도 소용없었다. "이론적으로는 문제없습니다"라는 답만 돌아왔다.
도진은 직접 라인으로 걸어가 막힌 상자들을 확인했다. 하나, 둘, 셋. 손으로 바코드를 긁어내고 다시 스캔했다. 기계가 인식했다. 벨트가 다시 돌아갔다.
"역시 도진 씨 손이 제일 빨라."
김택배가 웃었다. 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상자로 넘어갔다.
85%.
도진의 철학이었다.
시스템은 85%만 처리하면 된다. 나머지 15%는 사람이 채운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완벽을 추구하는 순간, 모든 게 멈춘다. 차라리 85%를 빠르게 돌리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메우는 게 낫다.
CJ대한통운 입사 8년. 고졸 출신. 도진은 이 터미널 바닥부터 시작했다. 상하차, 분류, 배차, 운영. 모든 과정을 손으로 익혔다. 지금은 운영팀 대리. 그럭저럭 자리를 잡았다.
새벽 4시 30분.
첫 번째 간선 트럭이 출발했다. 도진은 출차 현황판을 확인했다. 서울 23대, 인천 12대, 부산 8대. 정상 운행.
"도진아."
박석호 차장이 다가왔다. 45세. 도진의 멘토. 20년을 현장에서 보낸 사람.
"오늘도 수고했다. 들어가서 쉬어."
"차장님도요."
"나는 좀 남아있을게. 아침 물량 체크해야 해."
도진은 박차장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 사람도 85%로 사는 사람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매일 나타나서 현장을 지킨다. 그게 전부다.
"과거가 중요합니다."
새벽 6시.
도진은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이메일 127통. 읽지 않은 메시지 83건. 하나씩 열어봤다. 대부분 지연 건 문의, 사고 보고, 본사 공지.
그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최도진 대리님,
안녕하세요. 전략기획팀입니다.
2025년 하반기 핵심 과제인 'AI 기반 스마트 물류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관련하여, 귀하를 AI 물류혁신 TF 현장 운영 담당자로 선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첫 회의에서 안내드리겠습니다.
정민수 과장
전략기획팀 AI혁신 파트장
도진은 마우스를 놓았다.
AI.
또 시작이다.
3년 전에도 있었다. '빅데이터 기반 배송 최적화'. 결과? 3개월 만에 폐기. 현장과 맞지 않았다.
2년 전엔 '딥러닝 물량 예측 시스템'. 역시 6개월 만에 증발. 예측은 맞았지만, 변수를 못 따라갔다. 갑자기 터지는 폭우, 고속도로 사고, 명절 특수. AI는 그런 걸 몰랐다.
이번엔 또 뭔가.
정민수. 도진과 동기 입사. 정민수는 본사 기획, 도진은 현장 운영. 정민수는 3년 만에 과장, 도진은 8년 만에 대리. 그게 현실이었다.
도진은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밤새 돌린 터미널이 조용해졌다. 주간 팀이 출근할 시간.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아내: 오늘도 새벽 끝? 저녁은 집에서 먹어. 윤아가 기다려.
도진은 답장을 쳤다.
도진: 응. 7시까지 들어갈게.
거짓말이었다. 오늘 오전 10시, 본사 회의가 있다. 서울까지 1시간 30분. 집에 들어갔다 나오면 늦는다.
도진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사로 가야 한다.
또 시작이다. AI가 뭔지도 모르면서, AI 프로젝트 담당자가 됐다.
85%.
시스템이 85%만 돌아가면 된다는 그의 철학.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AI는 100%를 원할 것이다.
완벽한 데이터. 완벽한 프로세스. 완벽한 결과.
그리고 도진은 안다.
완벽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황: AI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현장 용어를 하나도 모른다면?
프롬프트 (ChatGPT/Claude에 복사-붙여넣기):
기대 효과: 3년 걸릴 현장 학습을 3분으로 단축
상황: 밤새 발생한 수십 개 이슈를 상사에게 어떻게 보고할까?
프롬프트:
기대 효과: 1시간 걸리던 보고서 작성이 5분으로
*매주 화요일, 금요일 연재 | 구독하고 알림 받기 | 💬 댓글로 실습 후기 남겨주세요!*